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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

해병대 제1사단 '채수근 일병(상병)' 사망 사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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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채수근 상병 장례식 사진을 이용한 섬네일
채수근 상병 장례식 사진

 

 

● 채수근 일병 사망사건 개요

● 해병대의 대민지원 현장

● 채수근 일병 급류에 실종

● 채수근 일병 수색 작전

● 채수근 일병 시신 인양과 장례

● 군대에서 별이 된 채수근 일병

● 채수근 일병 사망 원인

● 사건을 은폐하는 대한민국 해병대

● 故 채수근 상병의 명복을 빕니다

 

 

 

 

채수근 일병 사망사건 개요

 

2023719일 오전 910분경 폭우 사태 피해지역인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의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사 수색에 나섰던 해병대 1사단 포병여단 제7 포병대대 소속 채수근 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 및 실종 14시간 만에 사망한 채 발견된 사고입니다.

 

 

 

 

 

 

 

해병대의 대민지원 현장

 

해병대는 한반도 폭우사태를 지원하기 위해서 해병대 장병들을 사고 현장에 대민지원 형식으로 지원했고 내성천 경진교와 섬강교 사이 22.9km 구간에 119명의 해병대원을 투입해서 실종자 수색작전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사망한 채수근 일병은 사망 전 날인 718일부터 실종자 수색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채수근 일병 급류에 실종

 

719일 오전 내성천 일대를 도보로 이동한 해병대원들은 인간띠 작전으로 내성천 안쪽에 일렬로 대열을 맞춰 탐침봉을 이용해서 실종자 수색을 실시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내성천 내 지반이 붕괴되면서 채수근 일병과 다른 2명의 해병대 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됩니다.

 

다행히 함께 떠내려간 해병대원 2명은 배영으로 스스로 헤엄쳐 급류에서 빠져나왔지만 채 일병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얼굴을 물 위로 내민 채살려주세요라는 말을 반복하며 외치다가 급류에 떠내려가 실종되었습니다.

 

수색당일은 전날 폭우로 인해 내성천의 물이 급격하게 불어나 해병대 상륙장갑차인 KAAV7A1도 실종자 수색에 투입하려 했으나 빠른 유속으로 장갑차는 철수하게 됩니다.

 

결국 장갑차도 철수할 만큼 빠른 유속에서 해병대원들의 무리한 수색작전은 채수근 일병의 사망이라는 안타까운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채수근 일병 수색 작전

 

채수근 일병이 급류에 떠내려가자 바로 민간인 수색을 중단한 해병대는 채수근 일병을 찾는데 주력했습니다.

 

급류사고 일대에 상륙용 보트인IBS와 드론, 헬기등의 장비를 동원해서 채수근 일병 수색작전을 실시하게 됩니다.

 

당시 사고를 전달받은 경상북도는 내성천 상류 지역의 영주댐과 저수지등의 방류를 중단해 빠른 유속을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오후 1210분경 고평교 인근 하천에서 채수근 일병으로 추정되는 실종자가 육안으로 잠시 발견되었습니다.

 

발견된 실종자의 인상착의는 발산 반팔 해병대 상의와 전자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던 모습이어서 채수근 일병이 확실해 보였지만 인양을 위해 보트가 접근하기에는 급류가 너무 빨라 결국 구조하지 못했고 채수근 일병은 다시 급류에 휩쓸러 떠내려가게 됩니다.

 

당시 채수근 일병은 의식이 없던 상태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고발생 이후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 도착한 채수근 일병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디 있냐며 대성통곡했고 해병대 관계자에게 구조에 대해서 따졌다고 합니다.

 

착하게만 산 우리 아들인데 이런 일이 있을까 봐 해병대에 가지 말라고 말류 했는데도 기어코 해병대에 가서 이런 사고가 벌어졌다며 오열했다고 합니다.

 

현직 소방관인 채수근 일병의 아버지는 채수근 일병이 속해있는 부대의 중대장에게 물살이 셌는데 구명조끼는 입혔냐,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왔는데 구명조끼는 왜 안 입혔냐고 물었고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싼가요, 왜 구명조끼를, 물살이 얼마나 센데, 이거 살인 아닌가요 살인이라며 따졌습니다.

 

구명조끼도 안 입히는 군대가 세상에 어디에 있느냐, 기본도 안 지니냐, 어제저녁에 아들과 딱 2분 통화했다, 물 조심하라고, 아이고 나 못살겠네라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채수근 일병 시신 인양과 장례

 

결국 채수근 일병 실종 후 14시간 만인 밤 118분경 내성천 고평교 우측 하류 400m, 수심 1m 지점에서 실종된 채수근 일병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어 예천 스타디움으로 옮겨진 뒤 다음날인 720일 오전 1245분경 태극기에 덮인 상태로 해병대 헬기에 실려 해군포항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수색 현장 인근 숙소에 있던 채 일병의 가족들도 채일병 시신 인양 소식을 접하고 119구급차와 승용차에 나눠 타고 해군포항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유족들은 중대장님 구명조끼만 입혔어도 살았을 텐데, 아이고, 아이고라며 통곡했다고 합니다.

 

채 일병의 친척은 황망한 표정으로 "채 일병은 외동아들이기도, 장손이기도 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결국 채 일병은 해군포항병원에서 공식적인 사망 판정을 받았으며 영안실에 안치되었습니다.

 

720, 채 일병의 추서 진급이 그의 생전 소속 부대인 해병대 제1사단장 권한으로 승인되었고, 해병대 1사단은 대강당인 김대식관에 '채수근 상병 분향소'를 마련하였으며 영결식은 722일 오전 9시 해병대 1사단 도솔관에서 해병대장으로 엄수되었습니다.

 

정부는 국가 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보국훈장 광복장을 서훈했습니다.

 

유해는 채 상병의 고향인 전북 남원과 가까운 국립임실호국원 내 봉안당 시설에 안장될 계획이었으나 유족 측이 봉안당 대신 묘지를 원했고 채 상병의 부친이 ‘양지바른 묘역에 꼭 아들을 묻어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여 유족과 협의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또 안장일에는 국가보훈부 본부를 포함한 전국 지방보훈관서와 국립묘지, 소속 공공기관에 조기를 게양했는데 순직 군인의 안장일에 보훈부 소속 기관에서 조기를 게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군대에서 별이 된 채수근 일병

 

채수근 일병은 20031월 전라북도 남원에서 가정주부인 어머니와 소방관인 아버지를 사이에서 장남이자 독자,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 원광대학교 창의공과대학 건축공학과 22학번으로 입학하여 다음 해인2023327, 대한민국 해병대 1292기 병으로 입대하였습니다.

 

7주간의 기본군사훈련을 마치고 5월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통신병으로 자대배치를 받고 7월 수해복구에 투입되어 실종자 수색도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게 됩니다.

 

이후 719일 밤 118분경 하천내부에서 인양되었고 다음날인 720일 군 병원에서 공식 사망판정을 받고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4 묘역-413판-13706호에 안장되게 됩니다.

 

 

 

 

 

 

 

채수근 일병 사망 원인

 

근본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대민지원이 안타까운 장병의 목숨을 앗아간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무총리등 윤석열 행정부는 예천군의 폭우피해 복구 대민지원으로 가용한 인근 군부대를 총동원하라고 국방부에 특별지시를 내렸고 윤석열 대통령이 동유럽 순방 기간 중 국내 지휘를 맡은 한덕수 총리의 국방부 장관 특별지시로 인해 국방부에서는 군부대 대민지원에 동의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게 됩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대민지원 동원 지시로 인해 발생한 인재입니다.

 

군인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에 여론은 각종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군대 지휘관의 안일한 대처와 병사를 소모품처럼 여기고 진급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일부 지휘관의 생각 역시 중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안전사고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수색작전과 맞지 않은 장비(장화) 착용 고집과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고 병사들을 사지로 내몬 지휘관의 대처는 결국 한 장병의 목숨을 잃게 한 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특히 추후 폭로된 내용에 따르면 해병대사령부 측의1415일 포상휴가를 미끼로 급류 속 맨몸 수색을 사실상 독려했으며 당시 수색 중이던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맨몸으로 실종자 수색에 나선 것은 사단장의 지시사항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수색에 동원된 대원들에게 하의는 전투복, 상의는 적색 해병대 체육복을 입고 다른 옷은 입어서는 안 되며 이후 사단장이 현장 지도를 나와 복장을 점검 예정이었다는 내용의 사단장님 강조 사항이 내려왔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결국 멍청한 지휘관과 부당한 지시인줄 알면서도 묵인한 중간 지휘관의 판단이 이번 사망 사건의 중요 원인이라고 판단됩니다.

 

 

 

 

 

 

 

사건을 은폐하는 대한민국 해병대

 

군 당국은 물에 들어갔을 때 깊지 않았으며, 소방 당국과 협의가 이뤄진 하천 간 도보 수색 활동이었다, 유속이 낮은 상태에서 지반이 갑자기 붕괴할 줄 몰랐다란 해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당시 소방 당국은 인간띠 수색을 극히 만류했으나, ()이 이를 무시하고 투입했다고 밝혔습니다.

 

애초에 물살이 너무 강해 투입 예정이던 상륙장갑차까지 철수한 상황에서 안전 장구류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병력을 투입한 것 자체가 군이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심지어 727일 해병대가 처음에 한 말이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군당국은 채 상병이 투입됐던 '수중 수색 임무'는 경북소방본부와 사전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임무였다고 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실이 경북소방본부에서 받은 답변 자료를 보면 채 상병이 실종되기 이틀 전인 717일 경북소방본부와 해병대 간에 수색 지원 인원과 구간 등을 협의했다고 합니다.

 

경북소방본부는 '수중수색'을 전담하고 해병은 '하천변(수변) 수색'에 나서기로 되어있었고 해병대가 수색 장비를 자체적으로 준비하기로 했으며, 안전 유의사항에 대해서도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수색 방법 등 작전 수행은 군 자체적으로 결정해 실시했다고 전했습니다.

 

반면 해병대는 경북소방본부를 만나기는 했으나 그런 경고는 들은 적이 없다고 주장해서 결국 군 당국의 사건 은폐가 조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채수근 장병의 안타까운 죽음은 이후 수사과정에서 수많은 논란을 만들었고 해병대 역시 믿을 수 없는 군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사건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채수근 상병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의 별이 된 귀한 아들아!

 

넌 누가 뭐래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해병이다.

 

원망도 한도 다 내려놓고,

 

차가운 물속에선 힘들었겠지만

 

이젠 편히 쉬렴.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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